100일 교리묵상 - 구원과 하나님의 계획

하늘나라에는 기쁨이 있습니다

96day

"…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 (계 21:3~4).

1908년 영국 맨체스터에 있는 제임스 해밀턴 박사의 사무실로 수척한 모습의 환자가 찾아와 말했습니다. "박사님, 저는 우울증에 걸렸습니다. 고독과 공포 때문에 더 이상 살아갈 수 없습니다. 어디서도 행복과 기쁨을 찾을 수 없습니다. 박사님이 도와주시지 못하면 저는 죽을 것입니다." 그의 말을 듣고 있는 해밀턴 박사는 "당신에게는 웃음이 필요합니다. 당신에게 웃음을 줄 사람을 소개해 주겠소."라고 대답했습니다. "그게 누굽니까?" "오늘 밤 서커스에 가서 '그리말디'라는 광대의 연기를 보세요. 그가 당신에게 웃음을 선사할 것입니다." 이 말이 끝나자마자 그 '수척한 환자'가 말했습니다. "박사님! 내가 그리말디입니다."

세상을 살면 살수록, 우리는 이곳이 기쁨과는 거리가 먼 곳임을 절감하게 됩니다. 참된 기쁨과 평안은 세상에서 구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써만 가능한 것이며, 그것이 완전히 이루어질 곳은 하늘나라뿐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늘나라를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한 곳"으로 묘사합니다. 이것은 단지 하늘나라에 애통과 통곡이 없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곳이 기쁨으로 충만한 곳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사실, 기쁨은 우리와 거리가 먼 단어입니다. 희락과 가슴이 터질 것 같은 환희는 우리에게 잃어버린 바 된 단어들입니다. 주님을 의지하며 성화의 삶을 사는 성도에게 하나님께서 하늘의 기쁨을 맛보게 하시는 것은 사실이나, 그것은 모두 이내 사라집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영혼에 가득 차서 이 세상을 눈꽃처럼 순결하게 주님을 위해 살고 싶은 소망으로 불타다가도, 어느 순간 영혼이 갈 길을 잃어버리고 나면 마음에 두려움이 깃들며 기쁨 대신 우울한 슬픔이 드리워집니다. 하늘의 신령한 기쁨을 전혀 누리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세상의 유혹과 우리 안에 남은 부패한 본성으로 인해 이 기쁨은 자주 차단됩니다.

그러나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누리는 기쁨은 죄에 의해 방해받지 않고, 정욕에 의해 감하여지지 않으며, 세상 주관자들과 악의 영들에 의해 방해될 수 없는 완전한 기쁨입니다.

근심과 모든 염려와 결별하고 온전한 기쁨이 그 가슴에 가득해서 매일매일 새날을 맞이하고, 그날이 매일매일 살아가는 인생의 날 중 최고의 날이 되는 곳, 아침마다 새롭고 늘 새로운 그 기쁨 속에서 말할 수 없이 가슴 벅찬 희락을 누리며 살아가는 곳, 그곳이 바로 하늘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찌 그 나라를 그리워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깊이 생각하기

요한 사도는 하늘나라에는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곧 하늘나라는 기쁨이 있는 나라라는 것을 말하고자 한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누리는 기쁨은 죄에 의해 방해받지 않고, 정욕에 의해 감하여지지 않으며, 세상 주관자들과 악의 영들에 의해 방해될 수 없는 완전한 기쁨입니다.

출처: 100일 교리묵상 구원과 하나님의 계획.doc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