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엡 1:17~18)
죄의 영향은 우리의 영혼뿐 아니라 우리의 모든 기능과 구조에도 미쳤습니다. 그래서 범죄 이후 인간은 영적으로 어둡고, 지적으로 매우 무지한 상태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 사실은 범죄 이후 아담과 하와가 취한 행동만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창 3:8).
아담과 하와는 나무 뒤로 숨으면 하나님을 피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들의 이런 행동은 어린아이들이 숨바꼭질할 때 구석에서 눈만 꼭 감고는, 자기는 보이지 않으니 아무도 자기를 찾을 수 없으리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각 생물의 이름을 지어 줄 정도로 총명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무지만이 남은 것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우리의 영혼에는 어두움이 깃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데도 그것들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뿐만이 아닙니다. 비록 영적 어두움이 깃들었지만, 하나님께서 알려 주신 것들을 기초로 깊이 연구하고 탐구하면 보다 많은 것을 이해할 수도 있는데, 그런 노력을 기울이기 싫어하는 마음이 생겨난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지적인 눈멂을 초래하였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계시를 이해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죄로 물든 우리에게 어두움과 무지는 본성적인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부단히 애씀으로 그것들을 떨쳐 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적으로는 보다 성결한 삶을 살고자 애쓰고, 지적으로는 부지런한 탐구 정신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끊임없이 배우고자 애써야 합니다.
지적인 눈멂이 심각해지면 모든 계시를 밝히는 환한 빛이신 예수님에 대해서도 무지해지고 맙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시던 시대의 기록들을 비교적 명백하고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그분이 계시를 밝히는 빛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시대로부터 멀리 떨어진 태초와 말세에 대한 기록은 우리에게 상당 부분 가려져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의 계시들이 우리에게 명확하게 이해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복음에 대해 무지한 신자는 설령 그가 구원받았다 하더라도 신자다운 삶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고, 그 말씀을 탐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미 알려 주신 것들을 지적인 눈멂으로 말미암아 보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말입니다.
깊이 생각하기
계시를 이해하는 일이 어려운 이유는 우리의 영적 어두움(spiritual darkness)과 지적인 눈멂(intellectual blindness) 때문입니다. 이 두 가지 장애물을 뛰어넘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