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교리묵상 - 구원과 하나님의 계획

인간의 죽음에는 속사람의 죽음과 겉사람의 죽음이 있습니다

5day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창 2:17하)

나무를 옮겨 심다가 실수로 나무의 뿌리를 상하게 한 적이 있습니다. 어떻게든 살려 보고 싶었지만, 한번 끊어진 뿌리를 이어 붙일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버리려고 뽑아 내었는데, 뿌리가 끊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잎과 줄기는 여전히 살아 있을 때처럼 싱싱했습니다. 그 모습에 차마 버리지 못하고, 죽은 것을 알면서도 그대로 한켠에 세워 두었습니다. 뿌리가 끊어진 그 나무는 무려 일주일간 그 구석에서 마치 살아 있는 나무처럼 생생함을 유지하며 서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일주일 후 제가 그곳에 가 보았을 때는 누렇게 말라 떨어진 잎과 말라비틀어진 죽은 나무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인간의 속사람의 죽음을 생각할 때면, 저는 그 뿌리 뽑힌 나무가 떠오릅니다. 죄로 인해 속사람이 죽었지만 겉사람의 죽음은 유보된 인간의 상태가, 뿌리는 끊겼지만 아직 죽음의 그림자를 눈으로 발견할 수는 없는 죽어 가는 나무와 비슷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흙으로만 창조된 동물들과 달리, 인간은 흙으로 빚어 생기를 불어넣어 주심으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생기를 불어넣으신 것은 곧 흙으로 만든 육체 안에 영혼을 불어넣으시는 작업이었습니다. 그로써 육체와 영혼이 결합하여 '살아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단지 육체가 호흡하는 것만으로는 살아 있는 것이 아니고, 육체와 영혼이 모두 살아서 함께 결합되어 있어야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동물들의 죽음의 의미는 죽음에 항거하는 육체의 모든 기능, 즉 생명의 끊어짐으로 단일하지만, 인간에게는 죽음의 의미도 겉사람의 죽음과 속사람의 죽음, 두 가지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겉사람과 속사람이 모두 살아 있는 상태가 아니라면 그는 동물의 상태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죄가 들어온 이후 인간의 상태는 살았으나 죽은 상태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생명적인 교제가 끊어짐으로 영혼은 죽고 육체만 살아남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 이런 이중적인 상태를 두시는 것일까요? 이것은 범죄한 인간에게 한 번 더 생명을 누릴 기회를 주시려는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이 영원히 수포로 돌아가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을 뿐 아니라, 당신이 창조하신 인간들이 영원히 멸망하는 것 또한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육체의 죽음을 유보하심으로써 영혼을 죽음의 상태에서 구하실 계획을 세우셨던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이 모든 고찰들을 통해 인간에게 찾아온 죽음이란 질병은 속사람이 죽은 상태를 가리키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깊이 생각하기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실 때 흙으로만 창조하지 않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다른 피조물들과는 달리 속사람과 겉사람으로 이루어져 있고, 죽음 역시 겉사람의 죽음과 속사람의 죽음으로 나누어집니다. 속사람은 죽은 채 겉사람만 살아 있는 상태의 비참함에 대해 묵상해 봅시다.

출처: 100일 교리묵상 구원과 하나님의 계획.doc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