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롬 4:5).
칭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성경의 '의(義)'라는 용어를 이해해야만 합니다. 성서신학에서 '의'라는 용어는 세 가지로 나누어 이해됩니다. 첫째, 하나님의 성품에 속한 의이며, 둘째, 율법이 요구하는 것을 행함으로 말미암는 의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복음적 의'입니다. 그런데 이 복음적 의는 그 탁월함에 있어서 율법적 의와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에 있어서 비교적, 혹은 상대적으로 의로운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완전히 의로운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 복음적 의는 완전히 의롭습니다.
칭의는 이 복음적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어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받게 하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의를 근거로 죄인을 의롭다고 칭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언입니다.
오래전에 제가 알고 있던 젊은이 한 명이 군에서 탈영을 하였습니다. 그는 민가에서 몰래 옷을 훔쳐 입고 도망하여, 그 후로도 오랫동안 도피 생활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경찰만 보면 이 골목 저 골목으로 피해 다녀야 했고, 멀리 여행할 때에도 꼭 시외버스가 아닌 기차만을 이용하여야 했습니다. 그는 항상 불안에 떨었습니다. 지나가는 순찰차만 보아도 두려워했고, 저 멀리 헌병이 서 있는 것만 봐도 도망쳤습니다. 하지만 그러다 결국 붙잡혀 옥살이를 하고, 삼십 세가 넘은 나이에 다시 군에 끌려갔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는 더 이상 길거리에서 경찰을 봐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죄값을 스스로 치르는 것만이 평안을 획득하는 비결인 것은 아닙니다. 죄값을 스스로 치르지 않고도 평안을 얻는 비결이 있습니다. 바로 자기가 지은 죄에 대하여 사면을 받는 것입니다. 적절한 절차를 거쳐 사면을 받았다면, 직접 죄값을 치르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전처럼 헌병을 피해 도망 다니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면을 통해 그는 법적으로 의로운 자가 되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의롭다고 선언하는 것이 가져다주는 유익도 바로 이런 것입니다. 우리는 죄인이며 우리 안에는 죄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순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최종적인 권위로 "이제 이 사람은 의롭다. 더 이상 이 사람의 과거, 현재, 미래의 죄에 대해 거론하지 말라. 이 사람은 이제 죄가 없는 것으로 친다."라고 선언해 주십니다. 그 선언의 결과로 우리는 의롭다 칭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섰는지라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내가 말하되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소서 하매 곧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히고 여호와의 사자는 곁에 섰더라." (슥 3:3~5)
깊이 생각하기
'칭의'라는 단어의 의미는 그를 의로운 사람으로 고쳐 주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그를 의롭다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죄인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면 그분의 거룩함 때문에 심판받고 파멸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우리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속죄를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의롭다고 칭해 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