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움이 없나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꼬" (시 118:6).
하나님과의 화목은 우리에게서 파괴적이고 부정적인 두려움을 몰아냅니다.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께서 나의 구원을 취소시키고, 나를 지옥으로 보내시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게 두려움이 없나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꼬. 여호와께 피함이 사람을 신뢰함보다 나으며, 여호와께 피함이 방백들을 신뢰함보다 낫도다." (시 118:6, 8~9)
이런 기대와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담대하게 살아가는 것, 이것이 하나님과의 화목이 가져다주는 효과입니다.
1968년 4월 3일, 미국의 흑인 지도자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모릅니다. 오늘 우리 앞에는 어려움이 놓여 있습니다. 나도 다른 사람처럼 오래 살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나는 지금 그런 일에 마음을 쓰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단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를 바랍니다."
실제로 킹 목사는 이 말을 한 다음 날 주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괴한에 의해 암살을 당한 것입니다.
킹 목사로 하여금 죽음 앞에서도 담대할 수 있게 하였던 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화목이었습니다.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우리에게는 아무리 세상이 요동해도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이 있습니다. 죽음이 흰 이빨을 드러내고 우리 앞에 와 있다고 할지라도 "죽음아, 오너라! 내가 너의 휘장을 찢고, 내가 그토록 그리워하는 우리 주님을 만나리라." 하고 담대하게 외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 담대함은 세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무모한 용기와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역설적이지만, 신자의 참된 담대함은 언제나 신령한 소심함을 기반으로 합니다.
"내가 이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 고민하며, 믿지 않는 사람이 볼 때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하나님과의 화목을 유지하는 일에 마음 쓰며 살아야 담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나를 그렇게 사랑하셨는데 내가 이래도 될까? 내가 이렇게 불순종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싫어하실 텐데. 하나님과의 화목이 깨지면 어떻게 하나. 다시 하늘 자원이 끊긴 그 어두움 속에서 사는 고통을 맛보기는 싫은데. 하나님,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 더욱 순종하며 이 화목을 지킬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노심초사하는 자세가 신자의 담대함의 비결입니다.
깊이 생각하기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면 더 이상 파괴적이고 부정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화목은 우리로 하여금 시편 118편을 노래하는 시인처럼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게 두려움이 없나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꼬"라고 담대하게 말할 수 있게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과의 화목이 가져다주는 효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