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구원하시되 ······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딛 3:5).
첫째로, 거듭나게 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중생은 곧 성령으로 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죄인을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우리를 위하여 이루신 중보 사역을 연결시켜 우리에게 적용시키는 유효하고 직접적인 원인은 오직 성령님이십니다.
둘째로, 중생에 있어서 성령의 역사는 인간의 본성에 적합하게 이루어집니다. 거듭나도록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작용은 인간의 마음을 어떤 열정적이고 감명 깊은 인상으로 사로잡거나 우리의 몸과 마음을 단순히 수동적인 도구로 삼지 않으시고, 영혼에 대한 직접적인 설득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우리의 마음에 역사하십니다. 인간이 의지를 가지고 스스로 자유로이 행동하도록 영혼에 대하여 설득하심으로써 인간의 의지를 움직이셔서 당신의 뜻에 순응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셋째로, 중생에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수 없습니다. 중생이란 현재나 과거, 혹은 미래를 불문하고 모든 사람의 허물과 죄로 말미암아 죽었던 영혼들이 성령의 역사에 의하여 다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거듭난 사람은 그의 성화의 정도에 따라서 거룩함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이 곧 중생의 정도 차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넷째로, 중생은 세례에 의하여 효력을 발생하는 것은 아닙니다. 로마 가톨릭교회와 루터파의 다수 교회는 '세례중생'의 교리를 따릅니다. 이 교리는 중생이란 영혼의 다시 태어남만이 아니라 칭의와 사죄까지 포함하는 것으로서 세례에 의하여 효력이 발생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생이란 세례라는 의식에 참여함으로 인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다섯째로, 중생과 삶의 개혁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거듭났다고 해서 즉시 도덕적인 삶의 개혁이 뒤따르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은 거듭나기만 하면 그 사람의 삶의 모든 부분에서 광범위한 개혁이 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중생을 통하여 다시 태어난 '새로운 피조물'은 단지 새로운 행동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신령한 역사로 말미암아 새로운 기질, 새로운 능력, 새로운 경향성, 그리고 영적인 기능을 갖게 된 사람입니다.
여섯째로, 중생은 열광적인 체험을 동반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인을 거듭나게 하시는 성령님의 사역은 열광적인 체험이나 황홀한 경험, 하나님의 음성을 듣거나 신비한 경험을 수반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사실은 예수님의 말씀 속에서도 분명히 나타나 있습니다.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깊이 생각하기
거듭나게 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시고, 중생은 인간 본성에 적합하게 이루어집니다. 중생은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수 없고, 세례에 의해 효력을 발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중생과 삶의 개혁은 같은 것이 아니며, 중생은 반드시 열광적인 체험을 동반하는 것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