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구원하시되 ······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딛 3:5).
인간을 소우주로 본다면 중생은 재창조와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것과 인간을 거듭나게 하시는 것 사이에는 뛰어난 일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 모든 것을 완전히 선하게 지으셨습니다. 인간을 비롯한 천지만물이 창조되던 때에 모든 것은 하나님 자신이 계획하신 완벽한 조화와 아름다움, 그리고 균정성과 탁월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모두 하나님의 존재의 영광스러우심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모든 만물은 그 존재에 적합한 실체와 작용을 갖게 되었으며, 그 존재의 본질에 일치하는 행복과 안식이 가능했습니다. 모든 만물은 서로 연결되어 있었으며, 각각의 존재는 서로를 의존하면서 동일하게 하나의 궁극적인 목적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 목적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영광이었습니다.
그들의 존재와 실체는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의 영향 아래 있게 되었고, 그들의 상호 관련성과 그들이 각각 존재하는 목적들은 하나님의 무한한 지혜 아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해서 당신이 창조하신 세계를 통하여 무한한 지혜와 능력을 드러내심으로써 온 세계를 당신의 신성한 영광의 충만함으로 가득하게 하셨습니다. 인간이 바로 하나님께서 이렇게 창조하신 피조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생명 없는 피조세계 안에서 계획된 그의 영광을 당신의 형상을 따라 창조하신 우리에게도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이며, 이는 타락을 통하여 상실되었으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구속으로 다시 회복되었습니다(약 1:18, 롬 1:20).
인간을 거듭나게 하시는 중생은 새 생명의 원리를 인간 안에 심으시고 영혼의 주도적인 성향을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행위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 3:5). 예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중생은 '물로 태어남'과 '성령으로 태어남'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죄로부터의 정결과 성령으로 말미암는 혁신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생의 본질입니다.
그러나 중생이라는 말은 항상 같은 의미로 사용되지는 않습니다. 존 칼빈은 중생을 아주 넓은 의미로 사용하여 영혼의 중생은 물론, 회심과 성화를 포함하는 인간 갱신의 전 과정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하였습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칼빈이 사용한 의미의 중생을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중생'과 구별하여 '신생'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서 이 둘을 구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논리적으로 볼 때 중생은 이어지는 회심과 성화를 비롯한 인간 갱신의 전 과정의 기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깊이 생각하기
중생은 재창조와 같은 위대한 사건입니다. 중생에 대한 감사와 감격이 여러분 안에 있습니까? 중생의 은혜에 대해 깊이 묵상하는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