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교리묵상 - 구원과 하나님의 계획

화목은 적대감과 거리감이 해소된 것입니다

34day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고후 5:19).

속죄의 세 번째 본질은 화목입니다. 그런데 화목하게 되었다는 것은 화목이 필요한 불화가 있었음을 전제로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화목을 이야기하기 전에 불화에 대해 먼저 살펴보아야 합니다. 인간의 범죄로 시작된 하나님과의 불화는 두 개의 단어, 적대감과 거리감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죄가 들어온 이후, 인간과 하나님은 서로 적대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을 창조하시고 천사보다 높은 지위를 허락하셔서 이 땅의 만물을 다스리는 통치자가 되게 하신 하나님이 인간에게 무엇을 잘못하셨습니까? 그러므로 인간이 하나님께 적대감을 갖는 것은 매우 부당한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해 적대감을 가지고 계신 것은 매우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인간에 대해 가지고 계신 적대감은 인간 자체에 대한 적대감이 아니라, 인간이 가지고 있는 죄에 대한 적대감입니다. 그러나 그 죄와 죄인이 결탁되어 있을 때는 이것이 이론적으로는 구별되지만, 실제적으로는 나뉘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러 나갔는데, 그가 차에 치여 짓이겨진 개의 사체를 안고 있다면, 여러분은 그에게 달려가 뜨겁게 안길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도 마찬가지이십니다. 죄라는 문제를 남겨 두시고 우리와 연합을 이루실 수는 없는 것입니다.

거리감의 문제도 역시 죄로부터 말미암았습니다. 인간 편에서의 거리감은 죄를 지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간에 대하여 가지고 계신 거리감은 당신의 거룩한 성품 때문입니다. 인간을 너무 사랑하시지만 당신의 거룩한 성품 때문에 죄인을 향해 거리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고난을 통해 한편으로는 우리를 향해 거리감을 갖고 계신 하나님의 마음을 어루만지시고,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를 어루만지셔서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문제가 대두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화목을 가져오셨다면, 이 화목이 누구에 대한 화목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장렬하게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적대감과 거리감을 풀고 아버지께로 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마음에 있었던 인간에 대한 적대감과 거리감을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해소시켜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먼저 마음을 푸시고 적대감과 거리감을 해소하시고, 자기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인간들에게 먼저 찾아오셨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지지하는 바는 바로 후자입니다.

깊이 생각하기

화목하게 되었다는 것은 이전에 불화가 있었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인간의 범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뜨려졌는데, 이 깨뜨려진 관계를 우리는 적대감(enmity)과 거리감(alienation)으로 설명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예수님께서 해소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신 여러분들께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적대감과 거리감의 해소를 누리고 계십니까?

출처: 100일 교리묵상 구원과 하나님의 계획.doc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