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속죄와 관련하여 사람들이 흔히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속죄해 주시는데, 왜 굳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이 필요하였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것처럼 말씀 한마디로 속죄를 완성하시면 되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이 질문에 대해 설명해 주는 두 가지 이론이 있습니다. 가설적 필요론과 결과적 절대적 필요론입니다.
첫째로, 가설적 필요론은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속죄하시기 위해 꼭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어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하실 필요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단지 하나님께서 그것을 기뻐하셨기 때문에 그것을 선택하셨고, 우리는 그것을 믿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어거스틴이나 토마스 아퀴나스 같은 교부들이 이러한 견해에 생각을 같이하는 이들입니다.
둘째로, 결과적 절대적 필요론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는 자기 아들을 세상에 보내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실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신의 성품과 법칙 때문에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지지하는 견해는 후자입니다. 이것을 이해하는 데는 이런 가정이 도움이 됩니다. 어느 나라에서 왕자가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왕의 군대에 의해 반란군은 모두 토벌되고, 반역을 주동한 왕자만이 사로잡혔습니다. 그때 아들은 왕인 아버지를 향해 선처를 호소합니다. 사실 왕은 자신의 권한으로 아들을 살려 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왕은 "죽여라. 나도 어쩔 수가 없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왕에게 아들을 살릴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더 큰 목적과 법이 있기 때문에, 살릴 수는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능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자신의 성품과 모순되기에 하지 않으시는 일이 있으십니다. 종종 이것이 못 하시는 것으로 묘사되기도 하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 일을 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왜 하지 않으셨을까요? 하나님의 거룩한 공의의 성품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께는 긍휼히 여기시는 사랑의 성품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범죄한 인간들을 다루실 때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내려다보고, 온 땅에 있는 피조물들도 바라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공의의 성품상 그대로 용서하고 사랑해 주실 수가 없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죄인들을 대신하여 형벌받으심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공의를 만족시켜 드리고, 죄지은 인간들을 공로 없이 용서받게 하심으로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만족시켜 드린 것입니다.
깊이 생각하기
하나님이시지만, 그분은 당신 안에 있는 공의로운 성품 때문에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으실 수밖에 없으셨습니다. 하나님의 공의의 성품과 자비의 성품에 대한 여러분의 이해는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