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롬 7:20).
텔레비전을 통해 수술을 집도하고 있는 의사의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가만히 선 채 손끝만 움직이고 있는데도 그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습니다. 아주 사소한 실수도 허락하지 않는 주의 깊은 눈빛과 빠르고 섬세한 손놀림은 보는 이의 마음까지 뭉클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텔레비전을 보자, 씁쓸하고 서글픈 마음이 몰려왔습니다. 자신의 영혼 속에 깊이 뿌리박힌 죄를 다루는 우리의 태도가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수술실의 외과 의사처럼 죄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은 푸줏간의 점원이 뭉툭한 칼로 고기를 다루듯 죄를 대합니다. 이것은 죄가 깃들어 있는 영혼을, 생명을 지닌 환자가 아니라 생명 없는 고깃덩이처럼 취급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로 값 주고 사셔서 우리에게 선사하신 소중한 선물, 새로운 생명이 심긴 자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가 그 선물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보고 계십니다. 수술대 위에 놓인 아들을 지켜보는 아버지의 애타는 심정으로….
그분의 마음을 뭉클하고 든든하게 해 드리겠습니까? 아니면 서글프고 씁쓸하게 해 드리겠습니까? 결정은 우리의 몫입니다. 죄를 다루는 우리의 태도가 그것을 결정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인간은 아무리 발버둥쳐도 죄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없습니다. 적어도 이 세상에 있는 동안은 말입니다. 인간을 옭아매고 있는 죄는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첫째는 죄책과 오염으로 구성되는 원죄이고, 둘째는 그 부패성으로 인해 실제로 짓는 실행죄(actual sin: 자범죄)입니다. 인간은 원죄로 말미암은 부패성과 거기서부터 흘러나오는 실행죄로 인해 끊임없이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계속된 범죄는 물려받은 원죄에 더하여져서 인간 안의 오염을 점점 더 확대시키고 악화시킵니다. 이것은 곧 죽음이라는 질병이 점점 더 깊어져 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마지막 때가 될수록 세상은 점점 더 악해지고 타락해서, 하나님을 금수와 버러지보다 못한 형상과 바꾸면서 살아가는 극도의 죄악된 삶이 보편화될 것이라고 말합니다(롬 1:23). 실제로 이미 그런 시대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환경을 개선하고, 교육을 시키고, 부를 균등히 분배하고, 복지제도를 개선하면 인간이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바보 같은 환상입니다. 그러한 방편들로는 결코 고통의 궁극적인 원인이 되는 죽음이라는 질병을 치료할 수 없습니다.
깊이 생각하기
원죄란 아담의 범죄로 인해 우리 안에 남게 된 죄책과 오염으로 구성되는 죄이며, 실행죄란 그 부패성으로 말미암아 실제로 짓는 범죄를 말합니다. 인간은 원죄의 뿌리와 거기서부터 흘러나오는 실행죄로 말미암아, 끊임없이 자신의 의지로 죄를 짓기도 하지만 자신이 원하지 않아도 범죄할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